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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속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의 생애와 유산

by DaOk 2024. 12. 10.

측천무후는 624년, 당나라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무조(武曌), 아명은 무미랑(武媚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지성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당 태종 이세민의 눈에 띄어 후궁으로 입궁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정치적 여정은 태종의 사후 시작되었습니다.

측천무후

황후에서 황제로, 권력의 중심으로

태종 사후, 비구니로 출가했던 무조는 고종 이치의 총애를 받아 궁으로 돌아오며 본격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기 시작합니다. 655년, 황후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고종이 병약해지자 실질적인 권력을 쥐기 시작합니다.

국가 통치를 맡으면서 측천무후는 여러 혁신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과거제도의 활성화로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고, 농업을 장려하며 백성의 세금과 노역 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대 세력을 숙청하고 공포 정치를 펼쳤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통치는 '개혁과 공포'라는 두 얼굴로 평가되곤 합니다.

690년, 그녀는 마침내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황제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통치 기간은 15년, 이 시기는 경제적 안정과 문화적 발전의 시기로 평가받지만, 잔혹한 권력 다툼도 이어졌습니다.

무자비, 공과를 후세에 남기다

705년, 재상들의 쿠데타로 인해 측천무후는 퇴위하고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묘비에는 어떤 글자도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공과를 후세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무자비(無字碑)는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논란 많은 생애를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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